미국 유학 경험담|직장인에서 늦은 나이에 가족과 떠난 실제 미국 유학 이야기

미국 유학 경험담|3만 원의 차이가 평범한 직장인의 인생을 바꾼 이야기

나의 유학 이야기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반드시 거창한 사건일 필요는 없습니다.

제 경우에는 고작 3만 원이었습니다.

1989년, 직장에서 대리로 승진한 뒤 우연히 보게 된 신입사원의 급여명세서 한 장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5년 동안 열심히 일한 대리와 이제 막 입사한 4년제 대학 졸업생의 월급 차이가 고작 3만 원이었습니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몇 년 뒤 저는 가족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당시 저는 젊은 대학생도 아니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가정을 꾸린 가장이었고 어린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직접 겪었던 직장인 미국 유학, 늦은 나이의 미국 유학, 가족 동반 유학의 현실​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1. 5년 직장 생활보다 강하게 남은 3만 원

1985년 초여름이었습니다.

군 제대와 동시에 중견기업에 입사했습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상업고등학교를 선택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갔습니다.

제대 후에는 바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가 믿었던 것은 하나였습니다.

성실하게 일하면 언젠가는 인정받는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밤늦게까지 회사에 남았고,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1989년 대리로 승진했습니다.

저에게는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장의 급여명세서를 보게 됐습니다.

옆자리 신입사원의 급여명세서였습니다.

그리고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5년을 일한 대리와 신입사원의 월급 차이가 고작 3만 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노력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그 신입사원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였습니다.

그날 이후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생겼습니다.

‘대학에 가야겠다.’

그 한마디가 제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2.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을 선택한 이유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1994년 당시 저는 이미 가정을 꾸린 가장이었습니다.

아이도 태어났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국내 대학에 다시 진학하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시간과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면 쉽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미국 유학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무모한 결정이었습니다.

돈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고 영어를 잘했던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상하게도 두려움보다 절박함이 더 컸습니다.

3. 직장 다니면서 시작한 미국 유학 준비

미국 유학을 결정했다고 바로 떠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만으로 유학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던 시절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직장을 다니면서 영어 공부부터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영단어와 숙어, 문법책을 붙잡았습니다.

지하철에서도 영어책을 펼쳤고 주말에도 공부했습니다.

하루에 단 한 단어라도 더 외우려고 했습니다.

아내가 모은 돈과 제가 어렵게 마련한 적금을 합쳐 유학자금을 준비했습니다.

토플 시험도 봤습니다.

만족할 만한 점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었습니다.

미국 대학에서 I-20를 받고 학생비자 F-1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서류들을 하나씩 챙겼습니다.

당시에는 각종 가족관계와 재정, 직장 관련 서류를 준비하고 번역하고 공증하는 과정도 상당히 번거로웠습니다.

마침내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인터뷰를 받았습니다.

뜨거운 날씨 속에서 긴 줄을 서서 몇 시간을 기다렸던 기억도 아직 생생합니다.

그리고 한 달 가까이 기다린 끝에 비자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실감했습니다.

‘정말 미국으로 가는구나.’

4. 1994년 9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1994년 9월 9일.

저는 가족과 함께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작은 원룸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짜 미국 유학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알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책으로 공부한 영어와 미국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영어는 전혀 달랐습니다.

5년 동안 영어를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말 한마디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트에서 계산원이 빠르게 질문하면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무심코 "Yes"라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버스 기사에게 노선을 물어보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강의실에서는 더 심했습니다.

미국인 교수의 강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공부였습니다.

그룹 토론 시간이 되면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영어로 꺼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정말 답답했습니다.

미국 유학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영어였습니다

특히 전공인 회계학 수업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교수님의 빠른 발음을 따라가기 위해 작은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강의를 다시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서점에서 회계학 원서의 번역본을 찾아 함께 읽기도 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도서관을 나갈 때 저는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에 갔겠다.’

그만큼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5. 가족과 함께하는 미국 유학의 현실

미국 유학은 저 혼자만의 도전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와 어린아이도 함께 미국으로 왔습니다.

저는 공부와 생활비 걱정에 매달리느라 아내가 얼마나 힘든지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아내는 육아와 집안일을 대부분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결국 아내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때 저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유학은 학생 한 사람만의 생활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생활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집 주변으로 나갔습니다.

운전도 가르쳤습니다.

조수석에서 긴장한 채 사이드 브레이크를 잡고 있었지만 결국 아내는 운전면허를 땄습니다.

차에 카시트를 설치하고 아이와 함께 조금씩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틈틈이 아내에게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단순히 운전을 배우고 영어를 공부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낯선 미국 생활에서 다시 자신의 생활 반경을 넓혀가는 과정이었습니다.

6. 미국 유학 중 아이가 응급실에 갔던 날

가족과 함께하는 유학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는 아이가 갑자기 고열로 쓰러졌던 날입니다.

아이를 안고 급하게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낯선 나라의 병원에서 아픈 아이를 안고 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내도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유학도 공부도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가 무사하기만을 바랐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곧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그날 병원을 나서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미국 유학을 하면서 처음으로 포기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생각했던 순간이었습니다.

7. 돈이 없어서 일까지 해야 했던 미국 유학 생활

경제적인 어려움도 컸습니다.

학비뿐 아니라 월세와 식비, 자동차, 보험, 각종 공과금까지 생각해야 했습니다.

특히 가족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돈이 들어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저는 학기 중에는 공부하고, 주말이나 방학에는 일을 했습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리쿼스토어에서 재고를 정리하고 청소하고 물건을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일하러 가고, 일이 끝나면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또 공부했습니다.

몸은 지쳐갔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졸업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미국까지 온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8. 유학자금 사기까지 겪으며 포기할 뻔했던 순간

힘든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학자금과 생활비로 가져온 돈 가운데 상당한 금액을 지인에게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하는 일까지 겪었습니다.

당시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나 큰돈이었습니다.

학기마다 등록금을 내야 했고 생활비도 필요했습니다.

정말 막막했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때 장모님께서 사정을 전해 들으시고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돈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다시 버틸 수 있게 해준 마지막 버팀목이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던 그날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9. 미국 대학 졸업,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공부하고 일하고 다시 공부했습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졸업식 날이 왔습니다.

졸업장을 손에 들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정말 여기까지 왔구나.’

기쁘기도 했지만 지난 몇 년이 너무 힘들어서인지 눈물이 먼저 났습니다.

저에게 미국 유학은 단순한 해외 학위 취득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상처가 남은 시간이었고, 동시에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미국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OO그룹에서 치열하게 일했고, 시간이 흘러 정년 퇴직을 하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한때는 신입사원과의 3만 원 차이 때문에 제 인생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미국 유학으로 이어졌고, 결국 새로운 직장생활과 긴 직장생활을 거쳐 정년퇴직까지 이어졌습니다.

10. 늦은 나이 미국 유학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요즘은 미국 유학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 대학 순위도 쉽게 확인할 수 있고, 학비와 입학조건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유학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왜 유학을 가려고 하는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히 다른 나라에서 공부해 보고 싶어서인지,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해서인지, 자녀 교육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의 삶을 바꾸고 싶어서인지 이유가 달라야 준비 방법도 달라집니다.

특히 늦은 나이에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을 생각한다면 학생 본인의 준비만큼 배우자와 자녀의 생활과 적응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저는 그 부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공부 계획만큼이나 가족의 생활과 마음을 먼저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돈도 반드시 넉넉하게 계산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학비만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주거비, 식비, 교통비, 보험료, 자동차 유지비, 예상하지 못한 의료비와 각종 생활비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유학은 결국 가족 전체가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을 바꾼 것은 3만 원이었습니다

가끔 그때의 급여명세서를 생각합니다.

만약 그날 제가 그 숫자를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계속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나쁜 삶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그날 처음으로 제 인생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갔습니다.

영어 때문에 좌절했고, 돈 때문에 힘들었고, 가족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졸업장을 손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그 직장생활도 모두 끝났습니다.

정년퇴직을 하고 뒤돌아보니,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오히려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시절을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부릅니다.

완벽한 성공담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거창한 꿈이 아니라 3만 원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혹시 지금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지만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제 이야기를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 역시 늦었습니다.

돈도 부족했습니다.

영어도 잘하지 못했습니다.

가족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출발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유학이 정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완벽한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평생 출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미국 유학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제 인생을 바꾼 것은 3만 원이었고, 그 3만 원이 던진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는 미국으로 갔습니다.

이것이 제가 오래된 기억을 꺼내 ‘나의 유학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미국 유학 경험에 대해 자주 받는 질문

Q. 직장생활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을 가는 것이 가능했나요?

가능했습니다. 다만 가능하다는 것과 쉽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당시 저는 이미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학업뿐 아니라 가족의 생활과 경제적인 문제까지 함께 준비해야 했습니다.

Q. 미국 유학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저에게는 영어였습니다. 시험을 위한 영어와 실제 미국 생활에서 사용하는 영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 대학 강의를 이해하고 전공 수업을 따라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Q.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을 하면 어떤 점을 준비해야 하나요?

학생 본인의 학업만 준비해서는 부족합니다. 배우자의 생활, 자녀의 학교와 의료 문제, 주거와 교통, 생활비까지 함께 계획해야 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이 부분이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Q. 미국 유학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유학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는 왜 유학을 가려는지부터 분명히 하셨으면 합니다. 목적이 분명하면 힘든 순간에도 버틸 이유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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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을 실제로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되는 것은 결국 비용과 진로입니다.

제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이야기와 함께 미국 대학 편입, 미국 유학 비용, 미국 이민과 비자에 관한 글도 함께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나의 유학 이야기는 앞으로 제가 직접 경험했던 미국 유학과 직장생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글이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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